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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Juan Carlos Ortiz) 소개

 

후안까를로스 오르띠즈목사님는 1934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부모는 모두 독실한 개신교인 이었다.
그는 매우 일찍부터 주의 사역을 시작했는데, 14세때에 이미 주일학교 교사로 일했고, 20세 때부터는 아르헨티나 전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온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아르헨티나의 영적 갱신 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무한 믿음교회(Faith Tabernacle)의 목회 성공은 그를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그는 1974년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린 로잔대회의 주강사로 초청을 받아 "으깬 감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여 전 세계 종교지도자들로 하여금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오르띠즈목사의 영향력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제3세계의 지역을 넘어 동구권을 포함하여 세계 다른지역에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는 기독계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까지 폭넓은 명성을 얻고 있는 전천후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세계 각국의 국회들, 대학들, 신학교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했다.
오늘날 그의 메시지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및 세계곳곳에 방송되며 여러 목회자들에 의해 인용되어지고 있다.
현재는 미국  L.A, Garden Grove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에서 목회를 하며, 세계 여러 곳에서 초청 받아 강연을 하고 있다.
1995. 3월 한국에 와서 수유리 성실 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와 대전 대흥침례교회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초청강연을 한바 있다.    

저서로는 (한국어번역본) "제자입니까?",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인간심성의 외침",  "청지기", "제사장", "사랑",   "생활", "은혜", "전도", "성숙", "소그룹모임", "하나님나라", "사탄", "주권" 등 20여종이 번역된바 있다.


 로잔 대회에 대하여

 

로잔 대회는 최근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복음주의 진영(150개국의 135교단을 대표하 는 2473명이 참석)이 1974년 스위스의 로잔(Lausanne)에서 최초로 가졌던 세계적 규모의 국제 대회였으며, 복음주의 진영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사회 정치적 활동이 강조되었던 대회이다. 오르띠즈 목사 님이 이 대회의 주강사로 초청을 받아 설교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교계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인물 이었음을 말해 준다.


 내가 본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

 

“지난 해 선발된 교계 영적 지도자들이 북캐롤라이나의 샤롯(Charlotte)으로 초빙을 받아 아르헨티나의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에게 열 시간에 걸친 집중 강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온유하신 목사님께서 강의를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의 의미를 체득한 한 인물의 발아래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와 중국의 순교자 워치만 니(Watchman Nee)와 같은 예를 따라 하나님께서 라틴 아메리카에도 그러한 한 인물로 까를로스 오르띠즈를 일으키셨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본회퍼와 워치만 니 처럼 이 명쾌한 스승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주권, 제자화 등에 관한 우리의 피상적 관념을 넘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내포된 실질적 의미를 찾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르띠즈 목사님은 자기 이론을 자신의 삶과 교회에서 즉각 실천에 옮겼으며, 이점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실 그의 강의는 그의 이론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설교는 경험이라는 실험실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던 그의 교회는 20세기 가장 바람직한 교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군중들은 단정히 앉아 경청하였습니다. 그분이 거기에 계셨기 때문에 그 자신이 하나의 권위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에 대한 복종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순종에 관해 말씀하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조차도 그의 권위를 인정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친 그대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이 아르헨티나 목사님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이론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인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간혹 있었다 하더라도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 그것을 실천하였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제이미 버킹검(Jamie Buckingham)


 내가 만난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
그분은 멋진 사람입니다. 파격적인 사람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순수하고 어린이 같은 천진 난만한 분입니다. 그분은 이론가가 아닌 실천하는 분입니다.
'오래전 여름, 무덥고, 짜증나던, 사업도 부진하던 때...후안까를로스를 책속에서 만났고, 지금까지의 내가 가진 신앙이란 것이 기독교라는 미신을 믿은 아주 유치한 초보의 단계임을 깨달았습니다.
「"전도지를 달랑 들고 전도하지마라! 우리교회 나오라고 떠들지 마라!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건물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다. 현 잘못된 찬송가의 가사를 고쳐 불러라. 건물 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때만 선한 것이다."」
그분은 과감히 자신이 섬기는 교회 문도 닫았고… 자신의 교회 교인들을 다른 교회로 내모는 등 또 어느주일날 예배는도시 한가운데있는 공원에서 미신자들과 여는등…  일상의 교회와는 달랐습니다.
그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칵테일 파티를 여는 등 그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가 그분을 주목했고…  기적이 일어났고,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95년 3월 한국에 오셨고, 오신 첫날 밤 우연히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후 10여일을 그분과 같이 다니며 사진도 찍고 설교를 경청하며, 그분의 밝고, 소탈한 서민적인 태도, 물질에 관심 없는 초연한 자세,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가지고 갈것도 없는 초대 교회 제자들의 삶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어린이가 지나가자 멈추어 서서 안아 주는 자상함이며…  밝은 미소와 겸손한 자세는 보기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한국에는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래 없이 성장한 한국 교회를 배우러 왔다는… 그리고 엄청난 열기에 감동했다는 분이었습니다.
맨 처음 이 기도를 읽을 때 놀랐고, 미소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두번, 세번 읽을 때 공감을 했지만, 하루아침에 제 방식을 바꾸진 못했습니다. 교육과 훈련이란 것이 그만큼 바꾸기가 어려운 것을 알았습니다. 네 번째 읽었을 때, 지금까지 시간을 정해 놓고 했던 기복적인, 비생산적인 기도를 중지했습니다.  엄청난 중압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만 7년 - 오르띠즈 목사님의 기도가 저에게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신나는 하루하루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산기도, 금식기도등 기도를 열심히 했다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님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혹 저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이 책을 내놓습니다.
그 동안 책 제작에 물심 양면에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생수처럼 넘치시길 빕니다.

수정판을 내며
2003년 12월 1일
미성문화원 장시왕